
향으로 적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서전
의 대필 작가, 최주희입니다.
🫧 1999. 06. 14
🫧 광주광역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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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살면서 아주 많은 순간을 마주합니다.
그 중 몇은 언제 떠올려도
깔깔 웃음이 나는 추억으로 남지요.
불쑥 이불을 팡팡 찼던 밤이,
가슴아려 한 켠에 묻어둔 기억이 있을 겁니다.
또, 구태여 내가 떠올리지 않고,
떠오르지도 않지만 분명 남아있는 추억도 있을 거예요.
어떤 경험은 기억으로서 회상할 수 없지만
분명히 나를 이루어 남아있습니다.
그리고 어떤 날 냄새가 저 멀리 깊이 잠겨있는
이 기억을, 감정을 끌어내는 힘을 발휘해 내기도 합니다.
'프루스트 효과'라고 부르는 현상이지요.
제게는 어릴 적 겨울이면 어머니께서 끓여주셨던
대추차 향이 그랬던 모양입니다.
어느 날, ‘대추차’스러운 장미 향을 조향하였는데요,
(제 명함을 받으셨다면 명함에 뿌려드린 향이
바로 이 대추차 향, '쥬베로즈'에요^^)
어쩐 일인지 이 향만 맡으면 마음이 몽글몽글 포근해지고,
용기가 불끈 솟아오르는 게 꼭 마법 같았습니다.
저는 이 사람과 기억, 향의 관계가 산호처럼 느껴집니다.
산호는 사실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에요.
폴립이 아들폴립/딸폴립을 낳아도 독립시키지 않고
한 몸으로 살아갈 뿐이지요.
그리고 손주의 손주의 손주의.........손주까지도요!
폴립이 모체에서 독립하지 않고 한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
산호의 이 모습이 기억이 점차 축적되어 어느 시점의
한 사람을 이루는 것과 비슷해 보였답니다.
언제 축적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내 것인 추억을
텔레포트하듯 불러오는 향의 역할, 후각의 전기 신호마저
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생물을 바라보는 양 유려하게 느껴져요.
저는 여러분이라는 산호의 어떤 폴립을,
당신을 이루는 중요한 기억이 될 향을 구현해드리는
대필작가이고 싶어요. 남이 기억하는 당신 뿐 아니라
당신이 기억하는 당신의 중요한 모습 한 자락을
작은 자서전으로, 향그러운 자서전으로 남겨드리겠습니다.
또 때로는 여러분 스스로의 기억과 감정 한 자락을
향으로 남기는 일을 도울 수 있다면
큰 영광이고 기쁨일 거예요.

🎓 전남대학교 농학사 2018. 03 - 2024. 02